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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 봉 현 (2003-09-09 13:17:44, Hit : 6887, Vote : 1512)
제 목  
   중추절 단상


우리 아버님이 1900년 생이시니까 나를 52세에 나셨고
내 나이가 어느덧 울 아버지가 날 나신 52세가 되었다.
두 분 다 벌써 돌아가신 지 오래고
가끔, 어쩌다 어렴풋이 꿈에서나 뵙긴 하지만
보고싶어도 듣고싶어도
이젠 그 모습 그 목소리 들을 수가 없다.

성묘는 추석 다음날이나 다음 다음날
다녔었던 것 같다.
두루마기 날리며 휘적휘적 앞서가는
아버지 뒤를 따라 걷던
들판길 산길은
지금 가보면 별 게 아닌데
그 때는 왜 그리 멀고 힘들었던지.
풀숲에 장끼들이 푸드덕 날고
탱자나무 가지에는
누렇게 곪은, 손을 안탄 탱자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새빨간 까치밥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었다.
주머니가 미여터지게 상수리를 주워와
구슬치기도 하고 도장도 파고 그랬었는데

아버지 어머니 성묘길에는
이미 옛날의 어렸을 적 추억 같은 건 없다.
앞이 툭 터진 묘택에서는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쌩쌩 지나가는 차들
구름을 꿰뚫은 회색 아파트들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을 뿐.

원래는 아버지 어머니 봉분 밑으로
우리 삼형제가 순서대로 묻히게 되어있어
성묘 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저 자리가 내 자리 그 옆은 네 자리 등
농담 비슷한 말 들을 흘리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말들도 쑥 들어갔다.

후대의 자식들이 그 먼길을  
지극 정성 찾아줄 것인지
그렇지도 못하다면
후대에 부담만 주는 것 아닌지.

우선 당장 내 아들, 딸이
내가 내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반만큼이라도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한강변 뽕밭 아파트촌에서 나서 자란
내 자식들이 무엇을 보배우며 커왔고
그들에게 좋은 추억거리 한자락이나마
남겨준 게 있기라도 한건지...

그저
아쉽고 안타까운
세월만 흐른다.


그래도
멋진 인생
부드러운 세상을 꿈꾸는

박봉현

-풍성하고 알찬 한가위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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