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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6 14:33:13, Hit : 10239, Vote :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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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히밀라야 여행기-(1)

◐◐◐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 ◑◑◑







<  여행기에 들어가면서  >


   어느덧 사회생활을 정리할 시기가 되어감을 느끼면서 인생의 어깨에 짊어졌던 짐을 내려 놓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 동안 꿈꾸어왔던 네팔 아니 정확하게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기로 하고,어려운 결심에 따라 지난 5/7~21에 걸쳐 다녀온 과정을 정리해 보고자 이 글을 씁니다.  다소 산만하고 장황한 설명이 있더라도 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우선 여행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네팔과 히말라야산맥에 대하여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1) 개관

위치:아시아 히말라야 산맥 중앙
수도:카트만두
화폐:네팔 루피(NPR)
언어:네팔어, 영어는 700만 명 정도가 2언어로 사용한다.(영어는 비교적 잘 통하는 듯 하며 우리보다 효과적인 영어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인구:28,563,377명 (2010), 42위 전체순위
면적: 147,181㎢, 93위 전체순위
기후: 몬순성기후, 아열대성기후
종교:힌두교 81%, 불교 11%, 이슬람교, 과거 힌두교를 국교로 지정한 나라로써 이 나라 국민들은 지금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고 있다.
종족:체트리족 16%, 브라만힐족 13%, 마가루족 등 36 부족
정체:입헌군주제(현재는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국가원수:국왕
정부수반:총리나라
꽃:랄리구라스(만병초과에 속하며, 짙은 붉은색,흰색,분홍색 등 다양한 색을 띈다)
국기:1923년 당시의 국기는 지금의 네팔 국기와 같으나 사람의 얼굴 모양이 있었으나. 1962년에 왕이 바뀌자 국기도 지금처럼(얼굴 완전히 삭제) 바뀌었다고 하며, 세계에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지 않은 국기일 뿐 아니라 2개의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2)지리 및 정치

네팔(네팔어: नेपाल, 영어: Nepal)은 남아시아에 있는 내륙국가로, 북쪽으로는 중국, 동 서 남으로는 인도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부탄, 서쪽으로 파키스탄 등이 있다.
2006년까지는 이 나라의 공식 국명이 네팔 왕국(네팔어: नेपाल अधिराज्य 네팔 아디라쟈)이었다. 2007년 1월 15일에 왕정이 사실상 종식되고 과도정부로 정치체제가 변경되었으며, 2008년 5월 28일에 네팔 연방 민주 공화국이 되었다. 2010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민주 공화국이 된 나라이다. 147.181㎢의 영역과 약 3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네팔은 세계에서 93번째로 넓은 나라이고, 4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는 네팔에서 가장 큰 대도시이다.
네팔의 북부지대는 에베레스트 산을 중심으로 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으며, 남부는 비옥하고 습한 지역이다.
네팔 국민의 대부분은 힌두교를 믿는다. 비록 불교는 소수 종교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네팔이 석가모니의 탄생지라는 점을 유의 할 필요가 있다.
국명 네팔이라는 국명의 기원은 네팔의 수호신인 Ne와 보호라는 의미의 pal을 사용하여 직역하면 `신의 보호`라는 뜻을 가진다.

1768년 12월 21일에 독립하였으나 1847년 이후에야 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동안 네팔은 영국과의 식민지 전쟁으로 패배하여 독립 당시의 많은 땅을 영국의 식민지로 사실상 인정해야 했다. 원래 이 나라는 양의 왕조와 음의 왕조가 교대로 통치하였다고 한다(물론, 현재는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1990년 입헌 군주제로 변경되고 1994년 총선에서 네팔 통일 사회주의 당이 정권을 잡았다. 1996년 마오쩌둥의 공산주의 이론을 따르는 마오이스트(Maoist)들이 네팔 인구의 37.8%를 차지하는 네팔 원주민(자나자티스)를 인적자원으로 한 무장투쟁을 시작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를 냈다. 당시 무장투쟁 지도자는 현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 프란찬다 당수이다.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던 비렌드라 전 국왕은 네팔 왕실 대학살 사건으로 사망하였다.
2001년도에 즉위한 갸넨드라는 총리를 `공석`으로 간주하여서 네팔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2006년 4월에 대국민 TV 사과문을 발표하였으나 내전은 11월에 끝났다.
2007년도에 들어 네팔 사람들은 239년이나 지속된 군주제를 원망하게 되었다. 결국, 2007년 12월 23일 네팔은 국민 투표를 따라 군주제 폐지를 결정했다. 2008년 5월 28일에 네팔 제헌의회가 첫 회의를 열고 압도적인 찬성 속에 왕정 폐지와 공화정 도입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239년 동안 이어졌던 왕정체제가 끝나고 공화제로 변경되었다. 궁을 비우라는 의회의 통첩을 받았던 네팔의 왕과 왕비는 2008년 6월 11일 카트만두의 궁을 떠났다. 군과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궁전을 떠났으며 일부 왕의 지지자들이 앞길을 막는 시도도 있었다. 왕이 거주하던 궁은 박물관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네팔의 마지막 왕으로 기록될 갸넨드라는 국민들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히며 네팔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제헌의회 총선에서는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가 전체 의석의 1/3 이상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올랐으나, 2008년 7월에 열린 열린 선거에서 제헌의회는 국민회의당의 람바란 야다브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2008년 8월 15일, 제헌의회 투표에서는 네팔공산당 (마오이스트)의 프라찬다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왕실을 찬양하는 국가를 폐지하고, 왕실과 결합된 힌두교는 국교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국왕은 국군통수권을 상실하고 정부도 "국왕 폐하의 정부"에서 "네팔 정부"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여당인 네팔의회당과 다른 여러 당에서 제안되었던 왕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을 표명했다. 또한 임시 헌법에 네팔에서 가장 큰 정치 세력이던 네팔공산당 모택동 주의자(Maoists)가 임시 정부 복귀 조건으로 했던 "왕제 폐지"와 "연방 민주공화제"가 포함되는 것이 정해져, 네팔의 국가 형태 이 왕제에서 공화제로 전환하는 것이 사실상 굳어졌다.
2008년 4월 10일 치뤄진 제헌 의회 선거(지역구 240, 비례 대표 335, 의회 임명 26)에서 프라찬다 의장이 이끄는 네팔공산당 모택동주의파가 229석(지역구 120, 비례 대표 100, 의회 임명 9)을 획득하여 제 1당이 되어, 네팔의회당이 115석(지역구 37, 비례 대표 73, 의회 임명 5), 통일공산당이 108석(지역구 33, 비례 대표 70, 의회 지명 5)을 차지하여 왕정 폐지파의 정당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왕정지지파 정당은 유일한 국가 민주당 네팔이 4석에 머물렀다. 같은 해 5월 28일 소집된 제헌 의회 첫 회의에서 찬성 560표, 반대 4표로 정식으로 왕제를 폐지하고 연방 민주공화제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네팔은 길이 650km, 너비는 200 km 정도의 직사각형 형태이며, 전체 면적은 147,181 km²로 세계적으로는 93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북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자치구, 서쪽으로는 인도의 우타라칸드 주, 남쪽으로는 우타르프라데시 주와 비하르 주, 동쪽으로는 시킴 주와 웨스트벵골 주에 접하는 내륙국이다. 국경 길이는 총 2926km, 그 중 중국 국경은 1236km, 인도와의 국경 1690km에 달한다.
네팔은 비교적 작은 국가이나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펼쳐져 있는 습지와 중국과의 경계에 있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에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 많다. 네팔은 자연, 지리학적으로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산악 지대, 언덕 지대, 그리고 습지대로 나뉘는데, 이러한 구분은 정부의 지역 개발 계획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중국 국경 지대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m 급의 높은 봉우리를 포함한 히말라야가 존재한다. 따라서 고산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도와의 국경 지역은 "타라이" "테라이" 또는 "마데스"라고 하는 고온다습한 평원 지대가 있고, 비옥한 땅이다. 그 중간에는 언덕이 펼쳐진다. 최고지는 에베레스트로 해발 8850m. 최저지는 해발 70m이다.

3)        히말라야

중국 국경에 접하는 네팔 북부는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8000m급의 산(14좌 중 8개가 네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산 지대이며, 많은 등산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고산의 산간에는 빙하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고산의 눈이 녹아, 빙하 호수의 종괴가 문제가 되고 있다. 빙하 호수가 무너지면서 대량의 토사에 의한 토석류가 발생하여 큰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에베레스트 기슭에 있는 임쟈호수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주요 봉들은 다음과 같다. 안나푸르나봉은 히말라야산맥 중 10번째 높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에베레스트 8,844m
칸첸중가 8,586m
로체 8,516m
마칼루 8,462m
초오유 8,201m
다울라기리 8,167m
마나슬루 8,163m
<안나푸르나 8,091m


***이번 히말라야 트레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를 목표로 한다.

***네팔의 행정 구역입니다.
네팔의 행정 구역은 14개 지역 75개 군(district)이 존재하며, 5개 개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수도는 카트만두이다. 포카라 등의 주요 도시가 존재한다.

***주민
네팔인이 주로 거주하며 인도인이나 부탄인도 거주한다.
네팔의 인구는 2005년 기준으로 27,676,547명이며, 인구증가율은 약 2.2%정도이다. 연령분포를 보면 14세 이하가 39%, 15세부터 64세까지가 57.3%이고, 65세 이상 인구는 3.7%에 불과하여 평균연령은 20.07세(남성은 19.91세, 여성은 20.24세)으로 낮은 수준이다. 여자 1,000명당 남자 수는 1,060 명으로 남자의 수가 더 많다. 평균 수명은 59.8세(남자 60.9세, 여자59.5세)이다. <이상은 워키백과 상에 게재된 자료를 중심으로 편집함>

### 서두에 이렇듯 네팔에 대하여 좀 장황하게 언급하는 것은 어느새 네팔근로자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취업하다 보니 우리가 네팔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저도 이번에 놀랐지만 네팔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취업을 로망으로 까지 여기고 있다는 사실과 세계의 최빈국에 해당하는 소득수준으로 우리의 60~70년대 수준이고 삶이 사회 기반시설이 궁핍하다는 실상이 히말라야라는 천혜의 부에 가려진 측면이 많다고 느꼈기 때문에 장광설을 늘어 놓은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1.여행을 시작하며

지난 수 년 동안 가슴 속에 꿈꾸어 왔던 히말라야 트레킹을 드디어 실행할 수 있을 것인가. 여행의 최적기라는 10~11월은 나의 사회 업무(공시) 특성 상 이룰 수 없는 사상누각임이 10여 년 동안 증명된 이상 다소 아쉽지만 5월이면 어떠리. 거머리가 들끓고 몬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6월 이후는 안될 것 같고 기회가 주어졌다고 판단될 때 강행함이 맞으리라! 채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4.12에 최종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출발예정일 전일인 일요일 아침보도에 우리가 트레킹 예정인 Modi계곡 인근 옆 계곡에서 빙하 등의 눈사태가 발생해 포카라 인근 트레킹 출발예정지 진입로 변의 세티강물이 범람해 외국인 관광객 등 수십 명이 사망실종 했다는 소식이다. 혹시 트레킹이 불가능하거나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네팔 현지에 서둘러 전화 연락을 해보니 전혀 걱정할 상황이 아니라는 소식에 일말의 불안감 속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실지로 현지 트레킹 출발지로 가는 중에 현장을 보니 수위가 완전히 낮아져 있었다.
“눈의 거처”라는 뜻을 가진 히말라야, “곡식이 가득찬 곳”으로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안나푸르나!  나는 거기를 왜 가는 가. 위대한 자연 앞에 나를 맡겨 놓고 싶은 심정으로, 자유를 찾아 좀더 냉정하게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을 깔고, 그래서 통상적인 상념으로 하는 등반(트레킹)이 아닌, 장엄함의 극치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설산 앞에 내 자신을 세워 보고 싶은 마음과 10여 년을 해온 사진작업에서 늘 아쉬움의 한 자락으로 남아 있던 설산을 촬영해 보고 싶다는 바람의 해소 두 가지였을 것임을 고백한다. 그래서 다른 팀과 함께 하지 않고 30년 넘게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아온 배우자(이하 “반려자”로 칭하기로 함)와 단 둘이서 포터 2명과 한국말을 제법 하시는 네팔 현지인 가이드로만 팀을 구성해서 유유자적, 힘들면 쉬고, 사진 찍고 싶으면 찍고,때가 되면 자고 못가면 말고 등 등 아니면 말고 식의 트레킹을 해보기로 했다. 네팔 현지 여행사 장사장님(이하 “사장님”이라 칭)의 말씀마따나 최고급여행을 해보려 한 것 이렸다.


  
  



  












여행 일정표 요약
날짜
여행숙박지
비  고
2012-5-7
여행사 가정집
서울 출발
2012-5-8
Pitam  데우랄리
카투만두->포카라(국내선)->페디에서 트레킹시작,2박, 2100m
2012-5-9
지누(단다)
3박, 1780m
2012-5-10
뱀부
4박, 2310m
2012-5-11
데우랄리
5박, 3230m
2012-5-12
ABC
6박, 4130m

2012-5-13
뱀부
하산 시작, 7박, 2310m
2012-5-14
지누(단다)
8박, 4130m
2012-5-15
바라히호텔
9박, 포카라, 히말라야 완전 하산
2012-5-16
바라히호텔
10박
2012-5-17
ROYAL TIGER RESORT
치트완국립공원, 동물사파리, 11박
2012-5-18
ROYAL TIGER RESORT
치트완, 12박
2012-5-19
여행사 숙박지
카투만두, 13박
2012-5-20
여행사 숙박지
카투만두,14박
2012-5-21
귀국
비  고, 22일 새벽 귀가



    2.여행 1일째---카투만두에 도착하다

  아침 8:40 대한항공 인천출발 카트만두공항 12:55 도착(이하 네팔 시간)
네팔은 우리나라에 비해 3:15분 시차가 늦다. 시차가 30,1시간 단위가 아닌 15분 단위라는 게 특이한데 현지에서 누구에겐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인도와 같은 표준시간을 갖고 싶지가 않아서라는데 그 진위는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나라 시골공항 같은 공항으로 픽업 나온 사장님과 여행사 직원이 대뜸 꽃다발을 우리 두 사람에게 걸어준다. 비행기 안에서 짙은 안개로 시야가 흐려 히말라야산맥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오늘 숙박은 여행사사무실 겸 가정집인 민가에서 하기로 했다.
인도 대비 1.6배 고정환율제인 네팔 루피화로 일부를 환전하고, 적절한 포터 두 사람 분의 카고백 무게로 짐을 만들기 위해 일부를 남기고 치트완 여행에 필요한 짐은 포카라 숙박예정 호텔에 맡겨놓기로 하고, 사장님의 배려로 무거운 카메라 일부를 가이드가 져 주기로 해서(가이드는 절대 짐을 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함) 한 근심 덜었다.
오후에 가이드가 찾아와 여행 준비물품도 살 겸 타멜상가 지역을 둘러보고 관광지도를 사고 커피 생산지에 온 기념으로 커피도 한잔 한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붐비지만, 매연, 공해, 쉼 없이 울려 대는 차량경적소리, 노후한 건물, 쓰레기, 열악한 도로조건 등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시 듣던 대로 소가 유유자적 길거리에 돌아다니고.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 단전(다음의 단전예정표 참조) 속에서 한식 형식으로 식사를 하고, 대도시가 11시간 내외로 자가발전하여 전기를 공급 받는 지방에 비하여 오히려 단전시간이 더 길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작년에 예기치 않은 단전사태로 많은 혼란과 손해를 초래한 것과 비교해 보니 아이러니 하다. 고층빌딩도 없고 변변한 공장 하나 없으니 단전을 해도 별 불편이 없는 듯 하다. 하여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개짖는 소리와 까마귀 등의 새소리에 일찍 잠을 깬다. 네팔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사장님과 많은 정보를 얻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 여행사는 엄홍길 산악인 등 유력한 많은 한국산악인 등의 등정과 박범신 작가 등 한국인 트레킹객의 뒷바라지로 풍부한 정보와 조직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여 저으기 안심이 된다.





   <카투만두 숙소에 붙어 있는 단전예정표>

  그리고 참고로 미리 말해두지만, 사장님과 동행한 가이드에게서 들은 내용과 가이드 등을 통해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서 전달받은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다 보니 사실과 내용의 정확성에 한계가 있음을 사전에 양해 드립니다.

    3.여행 2일째---포카라로 이동, 트레킹 첫날


  아침 일찍 국내공항(국제공항과 붙어 있음)에 8시 예약된 26인승 프로펠러 항공기에 탑승하니 10분 전에 출발하여 30분 정도 비행 후 포카라 국내 공항에 도착한다. 히말라야 조망에 좋다는 비행기 오른쪽 좌석에 앉았으나 짙은 안개로 히말라야를 볼 수가 없어 아쉬웠고, 여승무원이 사탕과 솜(소음방지용?)이 든 바구니를 내밀길래 들은 풍월이 있어 솜을 골라 귀를 막는다



공항에 픽업 나온 승용차를 타고 예약된 바라히호텔에 들러 일부 짐이 든 카트가방을 위탁 후 8:40 페디로 출발, 어제 카투만두를 출발하여 페디에서 대기하고 있던 포터2사람을 만나 9:25부터 1220m 지점에서 트레킹 시작, 시작하자마자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산골 농촌마을을 지나 산 능선을 넘는 급경사 계단 길을 숨차게 오른다. 나무아래 쉼터에서 포터2사람과도 인사를 정식으로 나누면서 한국에서 가지고 간 열쇠고리를 하나씩 주며 부탁의 말씀을 전한다. 아무튼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10 여일 간 동고동락 하며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즐거운 여행길이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여행사에 수 차례 무난한 사람들로 골라 줄 것을 부탁한 바 있었다. 내 카메라 가방을 가이드가 메 주어 나는 작은 베낭을 메고 반려자는 빈 몸이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수많은 경작지에 경외감을 느끼며 작은 산간마을과 학교와 고개를 넘어 담푸스마을에 11:15쯤 도착한다. 아이들이 사탕이나 초콜릿 등 선물을 얻고자 옆에 바짝 붙어 한참을 따라온다. 담푸스가 설산 전망이 어느 곳 못지 않게 좋다는데 짙은 농무로 전혀 보이질 않는 것에 실망하고 점심을 위해 식당을 찾는다. 난생 처음 우리는 네팔 주요 음식인 달밧과 사과 2알로 점심을 해결한다. 사전에 들은 대로 가이드와 포터는 자기들끼리 만 다른 자리에 가서 식사를 해결한다. 물론 가이드가 식사메뉴를 주문 받아 가고 계산서(bill)를 가져오면 우리 몫만 계산한다. 먼저 지불한 일당 등 경비 속에는 스텝들의 식비와 숙박비 등의 경비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끓인 물만 먹어야 된다는 주의에 따라 뜨거운 물(따또 파니, 보통1L에 30~40루피)을 주문하여 찻병에 넣고 가지고 간 녹차를 넣어 우려낸다.



   <네팔음식:달밧>

   점심을 먹은 후 입산 퍼밋을 가이드가 하고, 호젓한 산길과 계단 길을 따라 오늘 숙박 예정지로 정해진 포타나를 향해 열심히 걷는다. 만만치 않은 곳에 위치하는 담푸스에서 포타나까지 해발 약250m를 올라온 것이다.
포타나에서는 입산객의 안전과 사고 유무 파악을 위해 입산 및 하산 신고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이드가 내일 일정이 빠듯하므로 오늘 좀 더 일정을 연장하자고 하여 숙박예정인 포카나를 2:45에 다시 출발하여 Pitam 데우랄리(해발2100m)까지 진행하여 3:45 도착 여장을 푼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저녁 후 무섭도록 세찬 강풍과 함께 비바람이 몰아치니 양철 지붕이 날아갈 듯하고 나무창 틈으로도 비바람이 몰아쳐 들어오니 비닐로 막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높은 산등성이의 산악기후를 실감하고, 나무 판자로 칸막이가 된 숙소는 난방시설도 물론 없고 전기도 간간히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는 2층 집이다. 우리가 랜턴을 이마에 달고 암흑 속에서 식사를 하는 증 식당에 난로를 피우니 어느새 여러 사람이 난로 주위를 둘러 싼다. 캄캄한 밤에 폭풍우가 계속되는 초저녁에 내일 날씨 걱정 속에서 어느덧 잠들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는 개척된 지가 30년 이상이 되어 비교적 숙박시설이나 트레킹 산길이 잘 개설되어 당나귀도 운반수송 수단으로 많이 활용하며, 돌로 쌓아놓은 쉼터-포터 등이 짐을 내려 놓거나 메고 출발하기 쉽도록 돌을 쌓아 놓은 곳이 곳곳에 있는데 이를 ‘쩌우다리’라고 한단다. ‘쩌우다리’위에 보이는 짐이 포터가 메는 우리 짐>


<2층 가운데가 우리가 잠을 잔 숙소이며 방 내부 모습>

***오늘은 페디(해발 1220m)에서 9:25에 출발하여 피참데우랄리(해발2100m)에 있는 숙소에 3:45 도착, 해발880m를 치고 올라온 셈, 날씨는 낮에는 구름이 다소 낀 맑은 날씨 저녁에는 강풍에 비바람.

    4.여행 3일째---지누단다까지 오르다


   6:30에 기상하니 그렇게 거칠게 몰아치던 지난밤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쾌청한 하늘을 보여주는데, 밖에 나가니 우리 스텝들이 밖에서 기다리다 저 멀리서 머리에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설산을 보라고 아우성이다. 처음 보는 히말라야 설산에 감동하며 정신 없이 카메라를 설치하고 셔터를 눌러 대고 아침을 먹는다. 히말라야 남봉과 히운출리 봉우리라고 한다. 맑게 개인 하늘에 감사하며, 다시 7:30에 오늘 일정을 위해 출발한다. 경사 심한 하강 길을 30분 걸어서 내려 가는데 맑은 공기와 수려한 산이 상쾌하지만, 2100m에서 출발하여 1800m(bhichuk & bhedi kharka)까지 내려온 게 다시 올라 가야 할 것이므로 반갑지만은 않다.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는 개화기가 지난 것 같고 야생화가 군데군데 피어있다. 가시엉겅퀴 재배지도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설산 모습이 장관인 톨카를 거쳐 란드룩에서 점심을 한 후 1340m에 위치한 출렁다리까지 하강하는 등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다 지누단다라는 숙소(1780m)에 3:45 안착한다. 란드룩을 지나 경사진 하향 길을 내려와 빙하가 녹아 내린 잿빛물색의 장엄한 계곡과 나란히 한참을 걷다가 출렁다리를 건너 뉴브릿지까지 산길을 걸어 숙소 코앞에서 마지막 급경사 길에 녹초가 된다. 톨카에서 바로 저기 보이는 지누단다의 숙소가 닿을 듯 말 듯한 곳인데 점심시간 포함 6시간 이상 걸렸다. 가이드가 4시간이상 걸린다고 했을 때 속으로 ‘과장도 심하시네 가이드 양반’ 그랬었다. 너무도 힘든 하루다. 촘롱까지 가는 줄 알고 숙소에서 하산중인 젊은 한국 애들이 걱정 겸 격려를 해 준다. 돈 주고 뜨거운 물에 배우자는 샤워하고 나는 머리 감다. 가이드는 엄홍길 등반대장 쿡 출신으로 경험이 풍부하며 포터들도 성실한 것으로 보여 안심이 된다. 특히 가이드는 뒤에서1m이상 떨어지지 않고 안내를  하며(대화에는 유용편리, 어두운 감추고 싶은 곳을 맘대로 촬영하기는 미안한 것도 사실) 고산 등반대와 등반습관이 있어서 나를 꼭 ‘대장님’이라고 호칭하며 포터들의 통제나 대화에도 무리가 없는 것 같다. 도착 후 스텝들이 20여분 내려가야 있는 계곡 변 노천온천에 가자는 걸 도저히 갈 힘이 없어 자기들끼리 다녀 오라며 팁을 조금 주고 우리는 빠진다.


    <개간지 모습과 출렁다리>  


    <톨카마을>  

산비탈을 일구어 작물을 재배하는 인간의 경이로운 힘에 새삼 고개가 숙여지며, 10시에 등교하는 어린이들을 만나고 국가에서 지원이 부족하니 교사가 직접 학교 기부금을 걷는다.우리도 반려자가 조금의 성의를 보탠다. 주민들 사진을 몇 장 찍고 나니 미안해서 사탕과 초콜릿 커피 등을 조금 주니 무척 좋아한다. 오늘 점심에는 달밧 맛이 너무 이상해서 여행 내내 달밧를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었음이 아쉽고, 대신 사과 한 알과 콜라 뜨거운 물 등으로 뱃속을 채운다. 오늘 밤에도 초저녁부터 집이 무너질 듯 비바람이 천둥 번개와 함께 무섭게 몰아친다.


      <학교와 아이들>  



나마스테(안녕하세요), 비스타리(천천히 가세요), 단야밧(감사합니다), 따또파니(뜨거운 물)을 배워온 게 매우 유용함을 느낀 하루였다.


*** 오늘은 피탐 데우랄리(해발 2100m)에서 7:30에 출발하여 지누단다(해발1780m)에 있는 숙소 3:45 도착, 날씨는 낮에는 안개와 옅은 구름이 다소 낀 맑은 날씨였으나 저녁에는 천둥 번개에 강풍에 억센 비바람.

    5.여행 4일째---빗속에 뱀부까지 가다

지누단다에서도 좀처럼 식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다. 서구인들 트레킹 팀이 많이 보이고, 하강팀들은 트레킹 과정과 의미 등에 대해 활발히 토론회도 한다. 특히 말만큼이나 체격이 좋은 서양 여자애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역시 가이드 말대로 끓이지 않는 물은 절대 먹지 않고 계속 뜨거운 물을 돈 주고 사서 가지고 다닌다. 그런데 우리는 거의 빈 몸인데도 이렇게 힘 드는데 포터들께 감탄할 수 밖에 없으며 새삼 미안함을 아울러 느낀다.
오늘도 어제 밤에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 오던 폭풍우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숙소 뒤 산 너머로 설산을 보여준다.
1시간 40분이 걸려 절벽 같은 계단 길을 따라 해발 400m를 올라 8:40에 촘롱에 도착하니 환상적인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마차푸레차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촬영 후 계단 길을 내려간다. 무려 해발 약2180m에서 돌계단이 해발 약1800m까지 이어져 내려 가는데 콘크리트 못지 않은 깔끔 완벽한 예술품 같은 반듯한 돌계단이 수천 단은 될 듯하다. 뜨거운 날씨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한다. 우리도 며칠 후 올라와야 될 길. 고지대이지만 동네가 크다. 학교도 있고. 그런데 다시 점심 먹는 숙소 예정지인 시누와 (2360m) 까지 한참을 치고 올라간다.




  <촘롱에서 바라본 위사진:안나푸르나 남봉(왼쪽)과 히운출리, 아래사진:마차푸차레봉>- 박무로 사진이 흐릿하다




  밥맛을 벌써 잃고 있으니 걱정되고 한국음식이 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시켰지만 맛없기는 마찬가지. 반려자는 콜라 한 잔 등 시원한 음료로 버티기 시작한다. 시누와 지나고 나서 부터는 당나귀 접근이 불가능하게 진입 장애물을 설치하여 출입을 제한하므로 당나귀 배설물이 없어 길이 상쾌하다. 이후로는 일반주민 거주지는 못 본 것 같으며 마지막 동네를 지나는 것 같다.


       <형제가 한국식당을 각각 한다고 들었다>

내일 일정이 오래 걸리고 힘들 것 같아 가이드와 상의하여(단독 여행의 즐거움과 여유) 시누와에서의 숙박예정을 바꾸어 뱀부로 정하고 1:20쯤 출발하려고 하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가게에 들어가 음료 한잔을 하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아 베낭과 카고백 등에 카바를 씌우고 우비도 뒤집어 쓰고 2시간 정도 빗속 행군을 강행하여 3:28 뱀부 숙박예정지(2310m)에 도착하다. 산속 숲길(당나귀 배설물도 없어서 좋다)이고 곳곳에 하향 돌계단길이 있다. 뱀부에는 말 그대로 대나무(주로 烏竹인 듯)가 많이 자란다.
이제는 완연한 히말라야 계곡에 깊숙이 들어온 듯 협곡과 깊은 계곡 물살이 거세고 소리도 우렁차다. 저녁 식당에서 두 꼬마 여자애를 낀 프랑스가족을 식당에서 만나다. 무얼 먹나!?냐가 최대의 고민. 고산 증세의 징후인지 밥맛도 잃고 속도 울렁거린 듯, 꿀쨈을 발라 토스트도 먹어보고 찐 감자도 먹어보나 뜨거운 물 이외에는 별로다. 반려자는 그것 마저도 거부하고. 전기불도 없는 암흑 속에서 밧데리 등은 돈을 주고 충전을 부탁한다. 땀과 비에 젖은 옷들은 매일 오후에 오는 비 때문에 마를 날이 없어 걱정. 방안에 빨래줄을 치고 널어보지만 잘 마르지 않는다. 비야 오거나 말거나- 이제 나도 여기 날씨 스타일(오후나 밤에는 어김없이 비 아침에는 쾌청)을 아니까 초저녁까지만 오다가 비가 개겠지 뭐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볼일 보러 일어나 나가보니, 새벽하늘 야간 낀 구름에 별도 일부 총총하고 푸른 하늘도 일부 보여 안심한다. 웅장한 계곡물 소리 속에 시커먼 협곡이 앞뒤로 우뚝 서 있다. 새삼 자연의 위용에 위압감을 느낀다.
우리는 오늘 저녁부터 준비해온 고산 증세 예방약(다이아믹스)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기 시작한다. 몸 곳곳이 부담스럽고 식욕도 회복을 못하니 하산 객이 너무 부럽다. 오늘은 오르락 내리락 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빠듯한 내일 일정을 감안 할 때 잘한 선택 같다.


*** 오늘은 해발 1780m 에서 7:00에 출발하여 뱀부(해발2310m)에 3:28 도착, 날씨는 오전에는 구름과 농무가 다소 낀 날씨였으나 오후부터 비가 계속 초저녁까지 내리다.

    6.여행 5일째---3230m 까지 오르다


  오늘은 히말라야에 입산한지 4일째.
오늘도 새벽 7:10에 숙소를 출발한다. 예정대로라면 해발 920m 정도를 치고 올라가야 한다.
역시 날씨가 기분 좋게 쾌청하게 개어있다. 여기는 춥지도 덥지도 않는 고도이다. 다만 식사를 원만하게 하질 못한 점과 고산 증세에 대한 우려가 남아있다.
한참을 치고 올라가니 8시20분쯤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계곡 변 길가에 포터들이 쉬고 있다. 환상적인 조망 포인트다. 시원한 계곡 물소리에 상쾌한 공기, 높은 산 맑은 하늘 기분이 무척 좋다.



     <도반 가는 길에 본 마차푸차레>


     <도반에서 본 마차푸차레>


<뱀부~도반~히말라야 부근 2000~3000m 고도 사이에서 본 야생화들>


     <히말라야 롯지>

     뱀부에서 도반을 거쳐 히말라야 데라울리까지 가는 길목에는 야생화도 많고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나무 등 원시림이 무성하다. 히말라야 로지에서 점심을 하는데 식욕이 회복되지 않아 음료로 대체하고 만다. 건축용 자재인 족히 수십kg이 나가는 가로 세로 20센치미터 내외 이상, 4m 정도 길이의 제재목이 수북이 날라져 와 있다. 여기가 자재 중간 기착지로서 순전히 인력으로만 그 좁은 산길을 따라 짊어 지고 날라온 것이고 앞으로도 ABC 등 더 높은 고지대로 또 날라갈 것 아닌가. 오! 감탄과 경이, 죄스러움이여. 일당도 별로 많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또 프랑스 꼬마 친구 들을 만나 사진을 한 장 찍고 물어 보니 자매로 10살,8살 이란다. 어린 친구들뿐 아니라 부모님까지도 달리 보인다. 이 귀여운 친구 들은 우리가 ABC를 오를 때 만났다가 내려올 때 또 만나는 등 여러 번 만나게 된다. 가끔 하산하는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워지면서 고향 까마귀만 봐도 반갑다는 옛말이 속으로 생각나서 웃는다




특히 히말라야~데우랄리는 원시림 같은 숲길에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고갯길이 이어진다. 눈사태로 길을 덮고 있는 빙설을 밟으며 걷기도 하는데, 산을 쳐다보니 드러난 크레바스와 폭포수가 협곡으로 흘러내린다. 손에 잡힐 듯한 구릉지 위에 있는 숙박예정지 데우랄리까지 1시간이나 걸린단다. 숙박지가 앞뒤로 수직벽을 이룬 암반 준령 밑에 있어 아찔함이 느껴진다. 드디어 3230m 고지에 있는 롯지에 2:30에 도착하니, 갑자기 한기가 몰려와 두터운 파카를 뒤집어 쓰고 침낭을 부지런히 펴고 이불까지 임차해서 빌려 덮고서(파카 입고, 우비 깔고, 침낭 깔고, 담요 깔고, 담요 덮고, 침낭 덮고, 이불 빌려 덮고) 꼼작 없이 한기가 풀릴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래도 고산 증세 탓인지 밥맛을 못 찾겠고 가슴이 울렁거린다. 둘이서 밑에 내려가면 한국음식을 실컷 먹어 보자고 약속한다. 특히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다. 한기가 좀 풀리자 밖으로 나와 젖은 옷가지 등을 밖에 널고 말린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내리다 그치니 야생화와 풍경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오늘은 비가 모처럼 내리질 않아 다행이다. 당연히 전깃불 공급은 안되는 거고, 돈 주고 충전을 부탁하고 일찍 잠든다. 춥다 너무 추워! 고산 증세가 은근히 걱정되고, 우리 스텝들은 비용 절감과 추위 방지를 위해 롯지 직원들과 식당에서 함께 자는 모양이다. 새벽 4시에 마당에 나가 보니 맑게 개인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고 계곡 가득 흐르는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소리에 계곡이 울린다.  


<폭포>


<눈사태>


<저 멀리 눈사태 지역을 지나 데우랄리 롯지가 있다. 저기까지 1시간이 걸렸다>


<눈사태 지역을 지나서 데우랄리 롯지 올라오는 길>

  *** 뱀부(2310m)->도반->히말라야->hinku cave->데우랄리(3230m), 꾸준한 등판길로 920m를 올라왔다. 7:10에 출발하여 2:30에 숙소에 도착하다. 오늘은 비교적 쾌청한 따뜻한 날씨로 저녁 나절에도 모처럼 비가 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산지대로 구름이 끊임 없이 몰려 왔다 사라지기를 수 없이 반복한다.  


    7.여행 6일째---목적지 ABC(4130m)에 도착하다


  7:23 데우랄리를 출발, 날씨는 높은 산봉우리 일부에는 안개구름이 다가오고 있으나 쾌청한 편
심산 고산 협곡을 따라 꾸준히 올라온 길 돌아보니 까마득 하다. 표고 470m를 올라오니 어느덧 MBC(3700m), 오는 길 곳곳에 고산 야생화가 피어 있고, 고산 협곡 사이로 탁류가 흐른다.
날씨는 구름이 변화 무쌍하게 봉우리를 가리지만 비교적 트레킹 하기에는 적당하다. 오늘 숙박 예정지가 MBC이지만, 오늘 내일 코스와 거리를 볼 때 오늘 ABC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식사를 잘 못하여 체력이 바닥이고 고산 증상이 조금씩 나타나는 듯 하여 걱정되지만 일단 MBC에 도착하여 판단해 보기로 한다.



<멀리 안나푸르나3봉 봉우리가 보인다. 그 곳 못 미쳐 있는 MBC가 일단 오늘 숙박예정지인 셈>


<저 멀리 안나푸르나 3봉이 보인다>


<곳곳이 눈사태 지역이다>

곳곳에 눈사태가 일어나 설빙을 밟고 걷는 길이 많아진다. 가이드가 어제 설산 밑에는 날씨가 따뜻해지기 전인 오전에 통과하여야 설산이 붕괴되는 사태(주로 초봄 오후가 많은 듯)를 피할 수 있다며 아침 일찍 출발하자는 얘기가 이해가 간다. 아침 일찍 내려오는 트레킹족이 많은데 너무나 환상적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에 마음이 설렌다. 어떻든 힘들게 표고470m를 3시간 이상 걸어 치고 올라 10:40에 무사히 MBC에 도착하여 점심을 든다.



<해발 3700m>

그런데 고산준령답게 우뚝 버티고 선 6997m의 마차푸차레, 6248m의 간다르바출리봉, 7555m의 아나푸르나3봉 등이 안개구름에 가려 좀처럼 그 자태를 보여 주질 않는 것이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 같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니 험한 협곡을 지나온 우리 자신이 대견스러워진다.






  점심 식사 후 내일의 일정이 긴 점을 고려하고 내일 ABC 아침 일출을 보려면 내일 새벽4시에는 기상해서 ABC에 가야 된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체력이 고갈된 상태로 고산 증세가 다소 우려되기도 하지만 반려자와 상의한 결과 내친 김에 3시간 거리인 ABC까지 430m를 더 치고 올라 가자는데 합의한다. 12시에 MBC를 출발하여 2:30분에 최종목적지인 대망의 ABC(해발4130m)에 도착하였다. 오늘 하루 결국 해발 900m를 올라온 결과인데 MBC에서 ABC까지 고산 증세가 심해지지 않도록 “비쓰따리”를 되뇌며 유유자적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쏟아진 빙하와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을 밟으면서 완만한 경사 길을 올랐다. 고산지대에서 동충하초를 캐는 주민 들을 만나서 얘기도 나누고(가이드는 진짜라며 몇 개를 산다), 프랑스 꼬마와 한국인 등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선글라스를 잠시 벗고 보면 푸른빛이 도는 백설에 눈이 부신다.



<아래 사진 중 아랬 부분은 우리 짐과 휴식 중인 가이드와 포터 2사람>


< 고산지대에 핀 야생화들, 추위를 이기기 위해 키가 작고 털이 많다>


<방금 캔 동충하초>

그러나 힘들게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니 변덕스러운 안개와 구름이 산을 가리고 추위가 엄습하여 구경은 뒤로하고 얼른 배정 받은 방에 들어간다. 두꺼운 바지와 파카 등 있는 옷 없는 옷 온갖 방한복 등을 껴입고 침낭을 깔고 이불 까지 대여 받아 두어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으니 날씨가 개인다고 가이드가 방에 와서 깨운다. 카메라와 장비 등을 들고 부리나케 뛰어나가 사진 1~2장 찍고 나니 다시 구름이 산을 가리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전깃불도 없는 어둑어둑한 방에 다시 들어와 잠시 숨을 돌리고 저녁을 먹고 나니 눈보라가 휘몰아치니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해발 2500m 지점부터 팽창하던 1회용 커피봉지도 곧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아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경이로운 자연이여! 그러나 두려움이나 거리감을 느낀다기 보다 왠지 포근함과 함께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드디어 5일을 걸어 올라와 도착한ABC,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결국 5일간 힘든 트레킹 끝에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였다. 몸은 녹초가 된 듯하지만 그래도 지나친 욕심을 부리다 고산 증세 탓에 ABC에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 하산한 트레커가 상당수라는 가이드 설명을 들으니 대견스럽지 않은가. 오늘 오후는 짙은 안개와 비바람과 눈보라에 정신이 없지만, 지난 며칠 동안 그랬듯 내일 아침(가이드가 6시 반이 일출이라 함)에 날씨가 쾌청하게 개여 쨍하고 설산을 보여 주리라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1시가 되도록 나는 잠들지 못한다. 속이 울렁거리고 식욕이 없으며 배뇨불쾌감과 콧물이 나는 등 고산 증세가 있는 듯 했지만, 잠을 이룰 수 없는 증세는 처음이다. 들은 상식대로 한밤 중에 밖에 나가 맨손체조를 하는 등 몸을 움직이고 들어 와서도 마찬가지로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 여기서 고산 증상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하면, 고산 증상은 낮은 지대에서 고도가 높은 해발 2,000~3,000m 이상의 고지대로 이동하였을 때 기압이 낮아지면서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급성반응이다. 고지대로 올라가면 점차 공기 중 산소농도가 떨어져 동맥 혈액에 녹아든 산소가 줄고(산소분압 감소), 조직에는 저산소증이 발생한다. 이에 대한 정상적인 보상반응을 순응이라 하는데, 상대적으로 숨을 많이 쉬어 산소부족량을 보충하고, 산소함유량이 저하된 혈액을 많이 순환시키며, 뇌의 혈관을 확장하여 뇌에 많은 혈액이 흐르도록 한다. 순응력은 사람마다 다르며, 저산소의 강도나 등산속도, 고지대에서의 신체활동량 등과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순응은 등산 시작 후 수분 이내에 시작되지만 완전한 순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수 주가 걸릴 수도 있다. 순응이 잘 안 된 사람이 2,000m 이상의 고도를 등반할 때 저산소증에 적응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 고산 증상이다. 급성산악병은 가벼운 두통과 숨이 답답한 증상으로 시작하여 대개 등산 후 1~6시간 사이에 발생한다. 이마 쪽으로 두통이 심해지고, 비특이적인 식욕저하, 구역(메슥거림), 구토 등의 소화기 증상과 권태감, 위약감, 소변량 감소, 수면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고산 증상의 심각한 증상인 고산뇌수종은 실조증과 의식저하 등이 나타나며, 12시간 내에 치료하지 않으면 혼수에 빠지게 된다. 고산폐수종 환자는 초기에 마른기침을 하고, 운동하면 호흡곤란, 폐수포음이 들리며, 더욱 심해지면 청색증과 거품이 섞인 기침, 안정시 호흡곤란, 의식저하가 발생하여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천천히 고도를 높여가며 등정을 하여 신체가 적응하는 시간을 주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급한 성격에 산을 정복이라도 하려는 듯 갑자기 속도와 고도를 높이는 바람에 고산 증상으로 일정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라고 들었다.
즉, 고산 증상은 병이 아니고 정상적인 신체의 반응현상으로 증세가 심할 경우는 하산 이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으며, 예방약으로는 비아그라나 다이아믹스를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입산3일째 저녁부터 아침저녁으로 반 알씩 복용하였다.


  *** 데우랄리(3230m)->MBC(3700m) ->ABC(4130m), 깊고 높은 계곡 길을 따라 표고 900m를 올라왔다. 7:23에 데우랄리를 출발하여 MBC를 지나서 2:30에 ABC 숙소에 도착하다. 오늘은 비교적 쾌청한 듯한 따뜻한 날씨지만 고산지대라서 그런지 안개가 자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저녁 나절에는 비를 흩뿌리다 눈보라로 바뀌는 매우 변덕스러운 추운 날씨로 돌변한다.


    8.여행 7일째---하산을 시작하다


  입산한지 5일 만에 최종 목적지인 ABC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오늘부터는 하산길이다.

고산 증세에 늦게 잠든 우리를 가이드가 5시 좀 넘어 깨운다. 아침 일출에 설산이 이미 잠을 깼다고…. 어!어! 일출이 어제는 6시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숙소 뒤 언덕에 눈을 비비며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연의 황홀경에 취해 사진 찍는 것 이외는 할 말을 잊은 듯 너무나 조용하다. 차가운 영하의 날씨지만, 날씨도 기대대로 쾌청하게 갠 파란 하늘 아래로 새하얀 속살을 드러내며 시간을 알 수 없는 영겁의 세월 동안 자리를 지켜왔을 경이로운 설산인 안나푸르나1봉 등등등!!!의 고산준봉들이 바로 눈 앞에서 우뚝서 온 세상을 내려다 보듯 빙 둘러 서있는 장관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순백의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안나푸르나1봉<8091m>(10번째 높이, 인류가 최초로 오른 8천m급 봉우리로 알려져 있다)을 필두로 안나푸르나사우스<7219m>, 바라하시카르<7647m>, 캉사르강<7485m>, 타르케강<7069m>, 강가푸르나<7454m>, 아나푸르나3봉<7555m> 등 여러7000m급 봉우리와 등반허가가 금지된 마차푸차레<6993m>, 간다르바출리<6248m>, 신구출리<6501m>, 타르푸출리<5695m>, 히운출리<6434m> 등 5~6천 m급 봉우리가 위용을 자랑한다. 가이드에 의하면 등반가 들을 위한 등반베이스캠프가 따로 안나푸르나1봉 바로 밑에 있다고 한다. 등반허가입산료는 인도와 파키스탄이 다르며 팀원수나 산봉우리높이 등에 따라 다르지만 1인당 1만달러 내외 수준에서 결정된다는 것으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을 한다. 한편 등반을 도와주고 1인당 5만~10만 달러까지 받는 상업등반대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설산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영광을 갖는 것 만으로 만족하기로 하며 숙소로 돌아온다. 옥에 티---슬라이드필름 촬영을 위해 가지고 간 라이카 바디가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노출측정에 문제를 일으킨다. FANTASTIC ABC!!! Good bye!



< 아침 일출에 빛나는 안나푸르나1봉과 감상하는 트레킹 온 사람들>


<아침 햇살이 눈썹처럼 비추는 안나푸르나 남봉>


<하산 길에 되돌아본 안나푸르나1봉과 남봉(왼쪽)>







<위와  아래 :히운출리봉>


<남봉>


<바라하시카르봉>


<안나푸르나1봉 봉우리>

<타루푸출리 봉우리>



<안나푸르나3봉 봉우리>


<마차푸차레 봉>


<내려오는 길에 한 컷>

설산의 장관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아침을 먹고나서 7:30 ABC를 출발하여 드디어 하산 길에 나서 뱀부에 5:25 도착한다. 어제 일정을 앞 당겼으므로 원래 오늘 숙박예정지였던 도반을 지나 다음지역인 뱀부로 정한 것이다.

여행이 자유를 찾아가는 것이라면 자유를 얻었는지, 우리를 그대로 받아주는 위대한 자연 앞에 겸손과 경외감을 배웠는가를 되물으며, 안나푸르나1봉 등을 아쉬움 속에 되돌아 보고 또 되돌아 보며, 하산하는 발길을 재촉한다.
역시 내려오는 길은 여유와 편안함이 있다. 데우랄리에 들러(11:14) 점심을 해결하고, 히말라야 롯지에서 잠시 쉰다. 도중에 한국학생들 그룹을 만났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너무나 힘들어 하고, 그 쪽 팀 포터 말에 의하면 일부는 고산 증상 등으로 ABC등정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친구들을 뱀부 숙소에서 다시 만났는데 피로와 비용조정 때문에 언쟁을 벌이며 숙소 옮기는 문제로 시끌하다. 반려자가 뭔가 도와주고 싶어 끼어들고 오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젊은이는 어느새 서구인들과 사귀어 유럽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너무나 좋아한다. 젊음이 부럽다! 80이 다된 듯한 여러 명의 여성서구인들이 그룹을 지어 올라온걸 보았는데. 그 여유로움과 용기에 감탄과 존경의 마음이 들고, 노후에도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은 어느 것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하기야 가이드 말에 의하면 80~90 연세된 분들이 트레킹하는 걸 여러 번 봤다고 한 걸 보면…  그런데 트레킹 도중 만난 동양인 들 중에는 내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았는데... 한편 야생화가 많이 자라는 도반~히말라야 구간 부근의 야생화들을 하산길에 보다 자세히 관찰할 계획 이었는데, 비가 와서 기회를 놓쳐서 아쉽다. 데우랄리~ 히말라야~ 도반~  뱀부 숲길이 좋은 걸 다시 느낀다.
도반에 다다르기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비를 쓰고 미끄럽고 질퍽한 길이지만 하산길이라 그런지 느긋한 마음으로 걸어서, 비바람과 우박이 내리치는 뱀부에 도착하여 젖은 옷 등을 말리고 반려자는 모처럼 샤워를 하고 좋아한다. 상행 길에는 높은 고도에서 머리를 감으면 고산 증세나 감기 걸릴 확률이 높아지므로 머리도 감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머리 감을 뜨거운 물도 없었지만.


<<<아래 사진:스텝분 사진 및 스텝분들과 함께,ABC에서>>>


<포터 2분(왼쪽이 락파, 오른쪽이 닉마)과 스텝들이 직접 써준 이름과 연락처>


오늘은 중요한 행사일정이 있다. 사장님이 고산 증세에 좋지 않으니 상행 길에는 가능하면 음주는 피하라고 강력히 권유해서 나뿐 아니라 스텝 일행과도 술 한잔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숙소에 도착하면 너무나 피곤하기도 하고 비가 거의 저녁마다 왔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가이드한테 점심 때부터 부탁한 것이 하산길이니 저녁 후에 스텝과 술 한잔 나누면서 이야기할 시간을 마련하라고 했던 것이다. 비록 풍성한 안주나 훌륭한 주류는 없었지만, 가져간 프라스틱병 소주와 맥주, 안주 등을 시켜 다섯이 비 오는 식당 밖 건물에 앉아 서로 이름과 핸드폰 전화번호를 기록한 메모지를 주고 받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서로의 가족관계나 애로사항, 신상과 여행 느낌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를 나눌수록 무척이나 순수하고 겸손한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와 락파 씨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40대 후반이며, 닉마는 23살의 젊은 청년으로 1년 전에 결혼한 친구(가이드도 결혼한지 몰랐다고 한다) 라고 한다(그래서 틈만 나면 핸드폰 통화한 상대가 색시였나 보다고 하니까 수줍게 웃는다). 나중에 사장님한테 들은 얘기지만 팀웍과 업무추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에 타 부족과 팀 구성을 같이 하는 걸 가능하면 피한다고 하는데, 셋 모두다 카투만두에 거주하는 세르파족이라 성이 모두다 Sherpa 라고 한단다. 여행에서 서로 반목하고 불화를 일으키면 여행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인데 우리는 여행 내내 잘 지냈다. 그 무거운 짐을 운반해준 포터들과 가이드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 아쉬움과 자유를 남기고, ABC(4130m)에서 드디어 하산 시작(7:30), MBC,데우랄리,히말라야,도반을 거쳐 뱀부에 도착(5:25, 2310m), 짓궂은 비가 히말라야를 지나고부터 내린다. 그러나 호젓한 길을 하산 하니 기분이 좋다. 올라 갈 때는 힘 들어서 아름다움을 별로 못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저녁에 스텝들과 함께 며칠 만에 술을 한잔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계속 따라와 뱀부 숙소 위에 떠있다.


    9.여행 8일째--- 높고 높은 촘롱 돌계단

  7:18 출발, 어제 내리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밤사이에 그치고 청명한 아침이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더욱 상쾌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한다. 오르막 계단 길도 가뿐하다. 오솔길 같은 호젓한 숲길이 흙 길이어서 더욱 좋다. 상행 길에는 비를 맞고 가서 못 느낀 것 같다. 가끔 한국 친구들을 만나니 반갑다. 당나귀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집을 지나고 개간지와 민가를 다시 보게 되니 이제 인간 세상에 내려 온 것 같다. 시누와를 지나 내리막길을 지나 촘롱을 오르는 수천 개의 돌계단을 걸으니 내려 올 때 걱정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들다. 경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돌계단 수천 개(해발 약1800m->2180m가 돌계단)를 통과하는데 1시간 35분이 걸렸다. 저점을 10:55시경 통과한 후 1:35 걸려 12시 반에 도착한 것이다. 계단 길을 힘들게 주파하여 올라온 후 촘롱을 지나니 또다시 급경사 내리막길. 마치 인생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 된다. 학교가 하나 있는데 경사지대 동네라 운동장이 멀리 따로 떨어져 있다. 촘롱에서 유명한 빵집에서 빵으로 점심을 먹는데, 올라오는 데 그로기 상태가 되어 둘 다 식사를 못하고 또다시 콜라로 식사를 대용한다. 그런데 좀솜에서 프로펠러 비행기가 착륙하다 사고가 발생해서 여행객을 포함하여 여럿이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을 가게 주인이 전해준다. 또 사고라니 걱정스럽고 변을 당하신 분들의 평안한 영생을 빌어본다.




<물소는 논의 물이라도 물이 좋아. 촘롱 가게에 붙은 가격표>


<우리나라 제주도의 정낭과 비슷하지 않나요>


<가이드 말에 의하면 산에 사는 조그만 악어종류 라는 데 알도 낳았어요>

오늘 숙소인 지누단다에 3:03에 도착한다. 상행 길에 잠을 잤던 같은 숙소라서 샤워도 좀 할 겸 욕실이 있는 특실을 구해 달라고 가이드에게 부탁하였다. 상행 길과 마찬가지로 스텝이 노천온천에 가자는 걸 도저히 기력이 없어 나는 포기하겠다고 했다. 식당에 가서 뜨거운 물을 돈 주고 사와서 물도 마시고 방안에서 컵라면도 끓여 먹으니 좀 살 것 같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 오늘도 어김 없이 무서운 돌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지더니 우박으로 변한다. 숙소 도착 후 비가 와서 다행스럽지만 온천 간다던 스텝들이 걱정된다. 한참을 지나 비가 그쳐서 온천에 가보고자 20여분을 걸어 계곡으로 내려가니 다시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잔뜩 덮어 어두워진다. 하는 수 없이 온천까지 갈 수가 없어 부리나케 다시 올라왔다. 가이드를 만나니 온천 가는 걸 포기 했었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은 같이 회식하는 게 관례라고 해서, 그렇지 않아도 술 한잔 하고 싶었었다고 말하며, 다섯이 같이 술 한잔 하면서 식사를 했다. (물론 오늘 저녁의 모든 식사와 회식 비용은 우리가 당연히 계산했다.) 오늘은 롯지가 조용해서 좋다. 회식하면서 내일이면 헤어질 두분 포터의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 드리며, 금전으로 약간의 성의표시를 했다. 그런데 식사 후 또 폭우가 쏟아진다. 늦은 오후나 밤만 되면 오는 비바람을 말릴 수가 없구나.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이로구나!

  뱀부(2310m)에서 밤새 개어 청명해진 날씨 속에 7:18출발, 오늘은 내리막길이어서 편안한 마음속에 출발했는데 시누와까지는 호젓한 숲속 길이었지만, 단내가 나도록 힘들다는 촘롱 오르막 돌계단 길에서 큰 펀치를 맞은 기분이다. 아무튼 지누단다에서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스텝들과 술 한잔 나누면서 회식으로 그 동안의 노고를 서로 위로하다. 숙소 도착 후 저녁나절에 돌풍과 비와 우박이 무섭게 쏟아진다. 광대무변한 고산지대라 그러한지 날씨가 변화무쌍함을 마지막 밤까지 보여준다.

    10.여행 9일째---하산도 힘들어

오늘은 히말라야 7박8일의 트레킹 중 마지막 날, 하산길이지만 매우 먼 길이다. 3시에 나야폴로 차를 오라고 할 모양이다. 만만치 않은 긴 일정 탓에 6:40 일찍 출발한다.



<지누단다에 있는 숙소와 롯지>

오늘도 역시 아침은 쾌청하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봉 등이 끝까지 따라 온다. 뉴브릿지 롯지에서 아쉬운 사진을 몇 장 찍는다. 급경사지를 개간하여 농사 지으며 산간 계곡에서 편치 않은 생활을 영위하는 원주민 마을과 사람을 만나기 시작한다. 산속 높은 곳에서 물을 받아 수차를 이용하여 자가 수력 발전하는 시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이 곤궁할 지라도 자연에 순응하며 산다고 해서 우리 보다 불행하지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어 보고 싶다. 행복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언젠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진실을 다시한 번 생각헤 본다.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불행하지는 않다는  얘기를 애써 상기해 본다. 우리의 60~70 년대를 뒤돌아보며 말이다.



  뉴브릿지를 지나 출렁다리에서 상행 길과 다른 길인 계곡 옆길을 따라서 비교적 호젓한 숲길을 걸어가고, 주민들이 거처하는 곳을 지나가기도 하며 그네들 삶의 속살을 가까이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한다. 무거운 발전기 등과 생활 필수품을 짊어 지고 가는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당나귀가 중요한 운반수단이라 짐을 운반하는 당나귀 무리도 자주 만난다. 저렇게 생활필수품을 멀고 험한 롯지까지 운반해 주는 수고로움 때문에 우리가 트레킹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고마움을 잊고 다녀왔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소년 목동을 만나 사진을 찍으니 손을 내민다. 하기야 주인은 여기 주민들이니 당연하지 않은가. 가지고 간 핸드폰 고리를 하나 주니 고맙다며 받는다. 할머니와 꼬마애 둘이 놀고 있는 민가에 들러 꼬마들에게 사탕을 주며 꼬마들 사진을 찍는다. 여행 원칙 중에 어린애들이 초콜릿이나 사탕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나 치아가 손상될 우려가 있고 자립심을 해칠 우려가 있으니 선심 쓰듯 주는걸 주의하라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고 가이드도 주질 못하게 한다.


<사탕을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들과 목동 소년>

하여튼 란드룩과 톨카마을 등을 계곡 양편에 두고 계곡을 따라 혹은 마을과 산허리에 난 트레킹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나이 어린 소년들이 무거운 짐을 머리에 걸고 운반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미안함을 느낀다. 공부해야 될 나이가 아닌가.  누구의 책임일까.
내려오는 길목에 촘롱에서부터 만난 서양 젊은이(남2,여1)를 만났는데 얼마나 힘이 드는지 태양이 내리 쬐는 흙 길에 벌렁 누워 있다(?). 아무튼 아침 일찍부터 4시간 반을 걸어서 11:9에 차량이 통행 할 수 있는 도로(신작로)를 개설하고 있는 곳에서 차량을 만나니 왠지 모를 반가움에 흥분된다. 나야폴에서 여기까지 약10여km 도로를 개설 중이라고 하는데 일반 승용차는 아직 다니기가 힘든 듯하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4시간여를 걸어야 우리의 목적지인 나야폴에 도착할 거라고 한다. 뜨거운 햇볕 한 점 가려줄 것이 없는 비포장길을!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지. 옛날에는 시장으로 유명했다는 사유리 바자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라면 (우리나라 라면은 많은 곳에서 판다) 과 스파게티를 점심때 주문했으나 식욕 회복이 덜되어 콜라 한 병으로 대신 하다시피 한다.





  또 출발이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자 하나 지나는 차도 거의 없을 뿐 아니라 5명이 탈 수 있는 차가 지나가질 않는다. 덕분에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산간 농촌 마을을 뙤약볕 아래서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며 터벅터벅 걷는다. 포터들은 언제나 그렇듯 꼬리도 보이질 않는다. 원주민이 담근 락시라는 전통주도 100루피에 1리터를 사고, 애들을 비롯해 원주민도 만나고. 2:45이 다되어 비레산티라는 곳에 도착, 하산신고도 하고 엄홍길이 추진하는 네팔 어린이들을 위한 휴먼스쿨 공사안내 간판을 만나니 반갑다. 바나나와 커피나무도 보고 반려자는 우리나라에서 파는 맛 없는 큰 바나나가 아닌 원숭이가 좋아하는 조그맣게 생긴 소위 몽키바나나도 산다.


  <<위:벌통 모습, 뚫린 부분은 소배설물로 막았다>>


  안나푸르나와 푼힐을 가는 트레킹족 등 많은 관광객이 들리는 곳이고 안나푸르나와 푼힐 등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주요 생필품 조달처이기도 한 비레산티와 나야폴이건만 생활여건은 많이 열악한 것 같다 나야폴에 있는 퍼밋허가소에서 또 하산신고를 한다.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는 나야폴에 3시에 도착하니 피곤이 엄습한다. 도로가 포장되면 히말라야 트레킹은 편해지겠지만 그만큼 자연과 환경 훼손은 빨라지겠지. 차를 타고 열악한 도로를 따라 큰 산을 넘어 1시간 반이 걸려 포카라에 있는 바라히 호텔에 4:30에 도착한다. 오늘 카투만두로 돌아가야 하는 포터 2명과 감사와 아쉬운 인사를 거듭하며 헤어진다(가이드가 새벽 4시경에 도착했다는 연락 받았다고 한다). 어찌됐던 호텔에 도착하여 빨래도 빨아 널고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니 너무나 좋지만, 냉장고도 없고 에어컨도 안 된다.  여기도 단전은 예외가 아니며 석양 무렵에 어김 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밖에서 숙식하는 가이드와 저녁에 만나 함께 한국식당을 찾아 삼겹살에 소주로 만든 폭탄주를 곁들여 한식을 들고 숙소에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가이드가 가져온 소식이 오늘은 번다가 취소됐지만 내일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단다. 걱정된다.

  *** 지누단다에서 새벽 6:40 출발 뉴브릿지, 큐미, 사유리 바자르를 거쳐 나야폴에서 차를 타고 포카라에 도착하다. 점심 시간 포함 7시간 20분을 걸은 셈으로, 오늘은 마지막 히말라야 7박8일의 트레킹 중 마지막 날인 것이다. 하산길이지만 멀고도 먼 힘든 길이다.  4시 30분에 포카라 바라히호텔에 도착하여 오랜만에 샤워도 하고 침낭이 아닌 이불을 덮고 자고 한국 음식에 소주를 한 잔 했으니 부러울 게 없다. 곳곳에 관광객이 넘쳐 난다.  따가운 햇볕 속에 걷기에는 괴로운 날씨였으며 포카라도 저녁 나절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11.여행 9~11일째---포카라에서 2박3일

포카라에서 피로도 풀 겸 2박3일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짠 일정대로 시간을 보낸 후 치트완 국립공원으로 사파리 여행을 떠나기로 스케줄이 짜져 있다. 계속 가이드는 우리와 함께 할 거다.
어젯밤도 역시 나는 고소증 후유증인지 잠이 잘 오질 않는 등 컨디션이 좋지 않다. 오전 여행을 잠깐하고 오후에는 일찍 호텔로 돌아와 쉬기로 한다. 번다를 심히 우려했으나 취소하기로 하였다고 하여 다행이다. 페와호수에 가서 쪽배를 타고 바라히사원이 있는 섬에 건너가 사진을 찍었으나, 히말라야 설산들이 호수에 비치는 잔영과 함께 사진 찍는 명소인데 계절탓인지 박무로 인해 시야가 청명하질 못해서 실망스럽다. 동굴과 강렬한 색채의 꽃을 잘 가꾸어 놓은 정원이 있는 산림자연박물관을 관람하였다. 히말라야 산맥에 대한 안내와 관련된 등반의 역사, 자료, 기록 들이 잘 정리 전시되어 인간의 도전정신과 웅대한 자연 등에 저절로 겸손해지게 한다. 각 부족의 삶과 역사, 생활상 등이 정리 전시되어 있다. 오후에는 너무나 피곤해서 화장터 방문 일정 등은 취소하였다.
그런데 물소는 푸대접(도살 도 가능하다고 한다)이지만 힌두 국가답게 시내를 자유롭게 배회하는 소를 많이 볼 수 있고 시내가 극심한 매연과 도로 상태나 주거여건, 교통시설 등이 너무나 열악하다. 점심도 한식으로 하고 가이드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왔는데, 노천카페와 선물가게 등이 많은, 시내에서 가장 번성하고 깨끗한 곳이 이 곳 숙소 주변인 것 같고, 외국인 관광객이 무척 많을 뿐 아니라 호텔로 돌아 오니 서양 관광객 들이 거의 반나상태로 실외 수영장에서 해바라기를 즐긴다. 오늘도 역시 저녁 무렵에 소나기를 뿌린다.







<아래 사진 포카라 관광지, 페와에호수, 호수 가운데 있는 바라히사원>

  저녁에 가이드와 한식집에서 원주민에게 사온 락시로 반주를 곁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가이드는 한식 요리사인 쿡 출신이라 (딸도 한국 요리 배우려고 한국에 유학 와 있단다) 한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 다행인데, 안색이 편칠 않아 보인다. 내일 치트완으로 이동해야 되는데 직장 파업은 물론 상가 철시뿐 아니라 차량 운행까지 정지시키는 번다가 내일 진행될 것 같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또 네팔이 히말라야에 기대어 관광객과 원조에 기대어 사는데 완전하게 소멸되지 않은 신분제 사회, 36부족 간의 갈등과 번다, 빈부격차 문제 등 네팔의 속사정에 대해 걱정스러운 솔직한 얘기를 많이 들려준다. 특히 번다로 인해 관광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 큰일이라고 걱정이 많다. 히말라야 관광과 외국 원조로 경제를 지탱하는 실정임을 생각할 때 동감이 간다. 내일 아침 번다가 취소되길 기대하면서 아침 7시 반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업로드할 화일이 너무 커서 나머지 "12. 치트완 부터" 는 부득이 제2시리즈로 다음 게시판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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